
1. 치료(Cure)의 한계와 케어(Care)로의 구조적 이동
최근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삶의 질까지 함께 고려하는 '론제비티'(Longevity, 장수) 개념이 주목받습니다. 비만약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것도 건강한 장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기에 세계적인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확산, 그로 인한 의료비 지출 급증은 지속적인 건강 관리와 사전 질병 예방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임을 보여줍니다.
2. 헬스케어 영역별 성장성은?
헬스케어 시장을 전통적인 치료제 공급자 중심의 가치사슬(Value Chain)이 아닌, 환자의 생애주기를 기준으로 나눠보면 예방-진단-치료-사후관리로 이어지는 여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각 영역의 시장 규모와 성장 속도는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주요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의 보고서를 종합하면, 예방·진단·사후관리 분야는 현재 시장 규모는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요. 반면 전통적인 치료제 시장은 이미 거대한 규모를 형성했지만, 향후 성장성은 다른 분야에 비해 낮을 전망입니다.
3. 조기 진단: 기술 혁신과 상용화 시작
예방 및 진단 분야에서 특히 조기 진단 분야는 현재 가장 기술 집약적이고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영역입니다. 핵심은 질병의 유무나 진행 상태를 나타내는 생체 지표, 즉 바이오마커(Biomarker)를 얼마나 잘 찾아내고 정교하게 분석하느냐죠
바이오마커(Biomarker): 단백질, DNA, RNA, 대사물질 등을 이용해 몸 안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혈액, 조직, 체액 등을 통해 암, 질병 상태, 치료 반응, 재발 여부 등을 조기 진단하거나 예측해 개인 맞춤형 치료에 활용되는 핵심 기술입니다.
이런 바이오마커의 유형 및 분석 방법에 따른 조기 진단의 하위 분야 중에서도 혈액, 조직, 체액 등 샘플에서 검출되는 DNA, RNA, 단백질, 대사물질 등을 활용하는 방식의 체외 진단(IVD, In Vitro Diagnostics)과 영상 기술과 AI를 결합해 질병의 초기 징후를 감지하는 영상 진단 분야를 우선 주목해 봐야 합니다.
🔍 체외 진단
체외 진단의 주요 분야 중 하나인 유전자(Genomics) 진단은 체내의 유전적 변이 현상이나 체내 또는 체외에서 질병에 유래한 유전자를 검출하는 방법입니다. 미국 이그젝트 사이언시스(Exact Sciences)사는 대변 속 DNA 변이를 검사해 대장암을 조기 진단하는 '콜로가드'(Cologuard)를 개발해 2014년 FDA 승인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만 1,400만 건 이상 검사가 수행됐고, 대장암 조기 발견율을 크게 높였는데요. 콜로가드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환자는 대장 내시경으로 암 존재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게 돼, 대장 내시경이 필요한 환자를 미리 선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 주목받는 액체 생검(Liquid Biopsy)은 혈액 속에 떠다니는 미량의 암세포 유래 DNA(ctDNA)나 엑소좀 등을 분석하여 질병을 찾아내는 기술입니다. 전통적인 조직 검사를 대체하는 최소 침습 기반의 검사로, 단일 암종 검사를 넘어 한 번의 채혈로 50여 가지 이상의 암을 동시에 선별하는 다중 암 조기 진단(MCED, Multi-Cancer Early Detection)이 핵심 트렌드죠.
엑소좀: 세포 간 신호 전달 물질(RNA, 단백질 등)을 담은 나노 크기의 작은 주머니로, 조직 재생, 염증 조절 및 세포 활성화를 돕는 세포 간 택배 역할을 합니다. 질병의 조기 진단 및 치료 반응을 확인하는 핵심 생체지표(바이오마커)로, 혈액, 소변 등에서 검출 가능해 암, 뇌 질환 등 난치성 질환의 비침습적 진단에 활용됩니다.
유전자가 설계도라면 단백질(Proteomics)은 그 설계도로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단백질은 질환 상태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하기 때문에 유전자보다 질병의 현재 상태를 더 잘 반영합니다. 다만, 단백질의 종류가 방대하고 분석의 기술적 난이도도 높아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이었는데요. 최근에는 질량 분석 및 초고감도 면역 측정 기술의 발전으로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국내 기업 베르티스(Bertis)는 혈액 내 다양한 단백질 바이오마커를 높은 정확도로 빠르게 분석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유방암 조기 진단 솔루션 '마스토체크'(Mastocheck)를 상용화했으며, 췌장암과 난소암으로도 파이프라인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암 외에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p-Tau 217 등)을 혈액에서 검출하는 기술도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미국 FDA는 후지레비오(Fujirebio)사의 '루미펄스'(Lumipulse) 등 알츠하이머 혈액 진단 키트를 승인했으며, 이는 '레켐비'(Leqembi) 같은 알츠하이머 치료제 처방을 위한 동반진단(Companion Diagnostics)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 영상 진단
영상 진단은 영상의학(Radiology)과 병리학(Pathology)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인간의 눈으로 놓칠 수 있는 미세 병변을 판독하고, 진단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분야입니다. 국내 기업 루닛은 흉부 엑스레이 분석 서비스 'Lunit INSIGHT CXR'와 유방암 진단 서비스 'Lunit INSIGHT MMG'의 글로벌 상용화에 성공했습니다. 뷰노는 심정지 예측 서비스 'Vuno Med-DeepCARS'를 통해 생체 신호 분석 시장을 개척했으며, 미국 FDA 승인 절차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런 조기 진단 서비스의 핵심 경쟁력은 민감도(Sensitivity, 질병이 있는 사람을 양성으로 판별하는 능력)와 특이도(Specificity, 질병이 없는 사람을 음성으로 판별하는 능력)의 균형에 있습니다. 위양성(False Positive)이 높으면 불필요한 공포와 추가 검사 비용을 유발하고, 위음성(False Negative)이 높으면 진단 도구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위양성: 실제로는 문제가 없거나 해당 조건이 아닌데도 검사나 모델이 양성이라고 잘못 판단한 경우입니다. 즉, 정상인데 이상이 있다고 잡아내는 오류입니다.
위음성: 실제로는 문제가 있거나 해당 조건에 해당하는데도 검사나 모델이 음성이라고 잘못 판단한 경우입니다. 즉, 이상이 있는데도 이상을 놓치는 오류입니다.
4. 예방: 진단을 넘어 질병 예방과 차단으로
질병 예방 분야는 조기 진단보다 더 근본적인 접근으로, 질병 발생 자체를 막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최근 디지털 헬스케어, 생활습관 개선 프로그램, 예방적 치료제 등에서 다양한 혁신이 일어납니다. 이 분야는 데이터와 임상적 근거를 바탕으로 질병 발병을 차단하거나 지연시키는 임상적 예방(Clinical Prevention)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오마다 헬스(Omada Health)는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당뇨병 예방 프로그램 DPP(Diabetes Prevention Program)는 미국 CDC 가이드라인을 16주 과정으로 구성한 프로그램으로, 연속혈당측정기(CGM) 같은 스마트 기기 지급, 전담 코치 배정, 개인 맞춤형 커리큘럼 제공, 동료 그룹 설정 등의 서비스로 이뤄져 있는데요. 2024년 발표된 실증 연구에 따르면 오마다의 DPP 프로그램은 일반적인 예방 처치를 받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제2형 당뇨병 진행을 유의미하게 낮춘 것으로 나타났죠.
불면증과 스트레스는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 되는데, 이를 관리하기 위한 디지털 치료제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 에임메드(Aimmed), 웰트(WELT)는 스마트폰 앱으로 불면증을 관리하는 디지털 치료제(DTx, Digital Therapeutics)를 개발해 식약처 승인을 받았습니다. 불면증 인지행동치료(CBT-I,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for insomnia)를 모바일 앱으로 구현해 수면을 방해하는 잘못된 습관과 생각을 교정하는데요. 두 기업의 제품 모두 임상시험에서 수면 효율이 대조군 대비 유의미하게 향상됐음을 입증했습니다.
디지털 치료제: 소프트웨어나 앱 기반 프로그램을 이용해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도록 설계된 의료용 디지털 치료 수단입니다. 약처럼 임상적 근거와 허가 절차를 거쳐 치료 효과를 인정받는 것이 특징입니다.
해외의 헤드스페이스(Headspace), 캄(Calm) 등 명상 및 마음챙김 앱은 이미 수천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습니다. UCSF 연구팀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명상 경험이 없는 약 1,400명이 헤드스페이스를 8주간 사용했을 때 프로그램 종료 후 스트레스와 심리적 증상이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진저(Ginger), 토크스페이스(Talkspace) 등은 맞춤형 정신건강 상담을 제공해 전문가의 조기 개입을 가능하게 합니다.
5. 투자 관점의 고려 사항
🏗️ 인프라 기업의 중요성
조기 진단 분야에서 본문에서 언급한 응용 서비스 기업들 외에도 바이오마커 분석을 위한 표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써모 피셔 사이언티픽(Thermo Fisher Scientific), 일루미나(Illumina) 등과 같은 인프라 기업들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질량분석기를 비롯한 실험실 필수 장비와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솔루션 시장을 점유한 기업인데요. 서비스 영역에서 누가 승자가 되든 안정적인 점유율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효과성 및 시장 확대 가능성
조기 진단 서비스가 실제 시장에 적용되려면 효과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질병의 양성 가능성을 예측하는 양성 예측도(PPV, Positive Predictive Value)를 얼마나 높이는지가 중요합니다. 이미 효과성을 입증한 서비스는 확장성(Scalability) 확보, 즉 보험사 및 의료기관과의 협업 체계를 누가 먼저 구축해 매출을 확보하느냐를 두고 경쟁에 나서게 되죠.
⌚ 웨어러블 헬스케어
지속적인 일상 건강 관리를 위해서는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필수적입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 시장은 2024년 800억 달러에서 2030년 2,000억 달러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 시장까지 고려하면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센서와 통신 기술 발전으로 비침습적 혈당, 혈압, 수분 상태 모니터링이 가능해지고 있으며, 이런 기능은 다양한 스마트 디바이스(링, 워치, 밴드, 글래스 등)와 결합돼 확대될 전망입니다.
6. 결론
현재까지 헬스케어 산업은 블록버스터 치료제가 주목받으며 성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인구 구조 변화와 삶의 질, 그리고 의료 재정 부담을 고려할 때 앞으로는 질병 이전 단계부터의 체계적인 관리와 진단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이미 기관 투자 증가와 다양한 서비스 출시로 드러납니다. 지금 시점에서 어떤 응용 서비스가 시장 지배력을 확대할 것인지, 또 그 기반을 뒷받침하는 기업은 어디일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이유죠.
블록버스터 치료제: 연간 매출이 10억 달러(약 1조 원) 이상 나오는 대형 히트 의약품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특정 질환 치료에서 표준 처방으로 자리 잡아 시장과 제약사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