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줄 요약
- 전기차, 배터리, 데이터센터까지 중국 산업 전반에 중복 투자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릅니다.
- 과잉 설비투자와 저가 경쟁은 기업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악순환을 낳고 있는데요.
- 중국 정부는 ‘집중화’와 ‘통제 강화’로 중복 투자 정리에 나섰지만, 성공 여부는 불확실합니다.
요즘 중국에선 전기차부터 배터리, 데이터센터까지 여러 산업에서 과잉 문제가 터져 나옵니다. 너무 많은 기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경쟁은 치열해졌고, 비슷한 공장과 설비가 중복으로 세워졌죠. 처음엔 빠르게 성장하는 듯 보였지만, 지금은 공급이 수요를 한참 웃돌고, 무리한 투자의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전기차 산업은 이런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세계 판매량 1위를 기록하며 중국이 승승장구하는 시장이지만, 한쪽에서는 수많은 스타트업이 문을 닫고 있고, 정부의 지원이 끊기자 ‘살아남을 곳만 남는’ 정리의 시간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전기차 얘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깊은 구조적 문제의 단면이기도 한 거죠. 오늘 <경제 한입>에서는 이 중복 투자 문제가 중국 경제에서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산업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이를 어떻게 정리하려 하는지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
중복 투자, 어디서 얼마나 심각한가
🪫 배터리와 전기차: 과잉 생산의 대표주자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 1위 점유율을 자랑하지만, 그 이면엔 심각한 중복 투자 문제가 존재합니다. 2024년 한 해에만 신규 등록된 배터리 관련 기업이 9만 개에 달했으며, 이 중 많은 수가 수익 없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는데요. 중국 지방정부가 앞다퉈 유치한 기업과 무분별한 보조금 정책 탓입니다.
특히 전기차 분야에서는 BYD 등 대기업조차 생존을 위해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차량을 판매하고 있어, 하청업체들은 단가 인하 압박과 대금 미지급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결국 경쟁은 기술이 아니라 가격 중심으로 변했고, 산업 생태계까지 흔들리고 있는데요. 이는 중국의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치킨게임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치킨게임: 서로 물러서지 않으면 모두가 피해를 보는 극한의 경쟁 상황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들이 가격을 계속 낮추며 경쟁하다 보면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되죠.
이러한 상황을 인식한 중국 정부는 구조조정을 예고했습니다. 전기차 산업을 '2+5' 체제로 재편해 핵심 민간 기업 2곳과 대형 국유·민간기업 5곳 중심으로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대표적입니다.
🧠 데이터센터, AI 시대의 중복 인프라
중국 정부는 2022년 ‘동수서산’ 전략을 내세워 서부 내륙에 AI용 데이터센터를 집중적으로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수요 예측 없이 정책이 시행되면서, 많은 데이터센터의 가동률이 20~30% 수준에 머물렀는데요. 실제로 2024년에는 100개가 넘는 프로젝트가 취소되거나 중단됐죠.
동수서산(東數西算): 동부에 몰린 데이터 수요를 서부의 저렴한 전력과 땅을 활용해 처리하자는 중국 정부의 전략입니다. 쉽게 말해, 데이터는 동쪽에서 만들고 계산은 서쪽에서 하자는 전국 단위 컴퓨팅 자원 분산 계획이죠.
접근성과 전력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방정부가 정치적 성과를 위해 투자를 감행하면서, 실제로 필요한 인프라보다 과잉 인프라가 더 많아졌습니다. 이로 인해 중국 공산당은 데이터센터 설립을 사전 승인제로 전환하고, 클라우드 통합 네트워크를 통해 통제하려 하고 있죠. 하지만 이미 설비는 과도하게 지어졌고, 이를 활용할 시장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데이터센터마다 사용하는 칩셋이 엔비디아, 화웨이, 인텔 등 제각각이고, 운영 체제나 서버 구조, 네트워크 방식 등 인프라도 서로 달라 표준화가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데이터와 연산 자원을 효율적으로 통합해 운용하기가 매우 어렵고, 시스템 간 연동을 위한 추가 개발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데요. 전문가들은 이처럼 기술적 비효율성과 자원 낭비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고 평가하죠.
💰 정부펀드, 성장보다 성과 중심의 투자
중국 정부는 전략 산업 육성을 위해 공공 투자 펀드를 적극적으로 조성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펀드들 역시 각 지방정부의 성과 쌓기 경쟁 속에 중복 설립되고, 실효성 없는 중복 투자를 양산했습니다. 특히 현급 단위의 작은 지방정부까지 펀드를 남발하면서 총 13조 위안 규모의 펀드 중 실제 집행률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죠.
이런 펀드는 초기에만 자금이 풀리고, 중장기 단계에서는 투자 약속이 파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자금이 적재적소에 배분되지 못하고, 동일 산업에 여러 펀드가 동시에 몰리는 문제가 반복됐는데요. 이는 결국 산업 전반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고, 투자 자체에 대한 신뢰도 하락시켰습니다.
2025년부터는 정부가 펀드 설립을 승인제로 전환하고, 중복 펀드를 통합하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앙정부는 성급보다 하위 단위인 현급 정부의 신규 펀드 조성을 금지하며 고삐를 조이고 있죠. 단순한 행정 통제를 넘어, 국가 차원의 투자 구조 개편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중복 투자의 부작용, 어디까지 번질까
📉 산업 전체의 수익성 악화
중복 투자의 가장 직접적인 부작용은 가격 하락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입니다. 공급은 넘치는데 수요는 따라오지 않으니, 기업들은 가격을 낮춰서라도 물량을 소화하려고 하는데요. 이는 곧 마진 하락과 기술투자 여력의 축소로 이어지게 됩니다.
수익이 낮아진 기업은 연구개발에 나설 수 없고, 기술은 낙후되며, 결과적으로 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낮아집니다. 특히 출혈 경쟁은 중소기업의 도태를 가속하며, 산업 양극화를 초래하는데요. 결과적으로 일부 대기업 중심의 왜곡된 시장 구조가 굳어지게 되죠.
이런 악순환은 산업 내 생태계를 해치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경쟁력 약화를 부릅니다. 특히 반도체·전기차처럼 기술집약 산업에서는 수익성 기반이 무너지면 국가 전체의 전략산업 육성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습니다. 중국이 기술굴기를 외치면서도 수익 구조를 안정시키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왜곡된 자원 배분
중복 투자는 기술력이나 시장성이 아닌 정치적 판단에 따라 자원이 배분되는 현상을 야기합니다. 예컨대 어떤 기업이 지방정부의 눈에 들거나 특정 펀드와 연결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쟁력이 없어도 자금이 흘러가는 일이 흔합니다. 이는 시장의 정상적 선별 기능을 마비시키는 요인입니다.
과잉 투자가 이뤄지는 산업에는 자본과 인력이 몰리지만, 이들이 과연 실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른 산업에 투입되어야 할 인재나 자본이 왜곡되게 흐르면서, 국가 전체 생산성도 낮아지는 결과를 낳는데요. 자원은 제한돼 있기에 효율적인 분배가 핵심인데, 중복 투자는 이를 방해합니다.
중국의 경우 그동안 정부와 시장 간 균형보다 정부 주도 모델이 강하게 작용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성과주의적 투자 방식에서 벗어나, 경제 논리에 맞는 선별과 조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중복 투자 정리는 곧 자원의 재배분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합니다.
🏗 IMF 당시 한국의 교훈
중복 투자의 폐해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던 한국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죠. 당시 반도체, 조선, 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에서 기업 간 설비 경쟁이 치열했고, 과잉투자는 부실과 부도를 낳았습니다.
IMF 이후 한국은 대규모 구조조정과 금융 시스템 개편에 나섰습니다. 비효율적인 계열사를 정리하고, 정부 보조금 의존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킨 것이 핵심이었는데요. 이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산업 경쟁력 회복에는 큰 도움이 됐습니다.
중국 역시 지금이 그 구조적 전환점에 와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중복 투자 문제를 방치하면 한국처럼 외환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내수 침체와 금융 불안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의 경험은 구조조정이 빠를수록 상처도 덜 깊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중국 정부의 정리 정책, 어디까지 왔나
📊 산업 집중화, ‘2+5’ 체제로
중국 정부는 각 산업별로 경쟁력 있는 소수 기업만 남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기차 산업의 경우, 민간기업 중 BYD와 지리자동차 두 곳을 핵심 주체로 삼고, 국유기업과 기타 민간기업 중에서 5개 주요 기업 그룹만을 남기는 ‘2+5 체제’로의 구조조정을 추진 중인데요. 구체적으로는 창안자동차, 둥펑자동차, 상하이차(SAIC), 제일자동차(FAW), 광저우자동차(GAC) 등이 5대 축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 ‘2+5’ 체제는 단순한 기업 수 축소가 아니라, 생산능력, 브랜드, 기술력, 글로벌 판매망 등을 기준으로 한 통합 구조 개편입니다. 예를 들어 창안과 둥펑은 이미 합병설이 오르내리고 있으며, 일부 중견 민간기업은 대기업에 흡수되거나 퇴출될 가능성이 큰데요. 정부는 이를 통해 브랜드 난립과 출혈 경쟁을 줄이고, 수출 경쟁력을 갖춘 전기차 챔피언 기업군을 육성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이처럼 구조조정의 핵심은 규모의 경제와 기술 집중입니다. 중국 내에만 수백 개가 넘는 전기차 브랜드가 존재했지만, 대부분이 기술력 없이 정부 보조금에만 의존한 상황이었죠. 정부는 이제 그 흐름을 끊고 글로벌 톱5 안에 최소 2~3개의 중국 기업을 안착시키겠다는 목표를 갖고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 지방정부 규제, 무분별한 투자 막기
시진핑 주석은 최근 “모든 성이 전기차에 투자할 필요는 없다”라며, 지방정부의 투자 과열을 공개 비판했습니다. 이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주도의 중복 투자에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에 따라 각 지방정부는 대규모 프로젝트 설립 시 중앙정부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특히 데이터센터, 배터리 클러스터 등 전략 산업에 대해선 지방정부 주도 설립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투자 분산을 막고, 중앙 통제하에 유효수요 중심의 효율적 배치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인데요. 펀드 승인제 도입과 함께 투자 사업 사전 심사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지방정부는 그간 중앙정부 성과 경쟁에 밀려 무리한 투자를 벌이곤 했지만, 이제는 이런 흐름이 차단되고 있는 셈이죠. 중앙과 지방 간 권력 균형이 산업 정책에서도 재조정되는 시기입니다.
🧹 투자 패러다임 전환, ‘질 중심 성장’으로
과거 중국은 양적 성장을 최우선으로 삼아 투자와 생산 확대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단순한 생산량 확대보다는 기술, 품질, 수익성을 중심으로 한 전략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중복 투자 문제는 성장 방식 전환의 시험대이기도 합니다. 투입 대비 산출이 낮은 낡은 모델을 벗어나, 고부가가치 중심의 산업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경고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특히 AI, 반도체, 그린에너지 등 전략 산업에서는 이런 전환이 더 중요하죠.
중국 정부는 중복 투자 정리를 통해 이런 전환을 가속하려 합니다. 하지만 공급 과잉이라는 기존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면, 또 다른 중복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정치적 의지가 아닌, 경제적 설계 능력입니다.
중국 경제는 오랜 기간 속도를 자랑하며 성장해왔지만, 이제는 질서와 효율이 더 중요해진 시점에 와 있습니다. 중복 투자는 단순한 낭비가 아니라, 산업과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위험 요소입니다. 지금 중국이 택해야 할 길은 무질서한 투자를 멈추고, 효율적이고 질서 있는 성장을 위한 구조 개편입니다. 한국이 IMF 이후 변화의 길을 택했던 것처럼, 중국도 지금 결단이 필요한 시기죠. 중복 투자 정리는 단지 설비 철거나 펀드 폐지가 아니라, 성장 전략 자체를 바꾸는 일입니다. 미래의 중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힘을 가질 수 있을지는 구조조정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