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한입] 돌아온 룰라, 남미판 EU를 만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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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한입] 돌아온 룰라, 남미판 EU를 만든다고?

(썸네일 출처: Lula Facebook)

브라질 정치계의 전설이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바로 룰라 대통령인데요. 2010년 퇴임 후 12년 만에 대통령으로 복귀한 룰라는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580일가량 투옥됐지만, 선고 무효 판결을 받고 극적으로 회생했고 결국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룰라의 복귀와 함께 중남미 국가들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는 ‘핑크 타이드(좌파 물결)’ 부활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중남미 국가 간 연대가 강화되면서 룰라를 중심으로 남미판 EU 추진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는데요. 이번 <인물 한입>의 주인공은 집권 3기에 나선 브라질 룰라 대통령입니다.

2022년 대통령 당선 수락 직후 연설하는 룰라

구두닦이 출신 노동운동가

  • 룰라는 1945년 브라질 북동부에 위치한 카에치스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7살  때 어머니를 따라 상파울루로 이사한 룰라는 가난한 형편 때문에 구두닦이부터 땅콩 장사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죠. 12살 땐 학업을 포기하고 구두닦이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 14살 때 금속공장 노동자가 된 룰라는 밤샘 작업을 하던 도중 직장 동료의 실수로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는 사고를 겪습니다. 그럼에도 룰라는 공장에서 12시간씩 일하면서 국가에서 운영하는 야간 직업훈련소를 다니며 선반공 자격증까지 취득했는데요.
  • 선반공 자격증을 취득한 룰라는 1966년 다른 금속공장으로 이직합니다. 이 시기에 룰라는 노조에 처음 가입하고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죠. 1975년 30살의 젊은 나이에 10만 명의 조합원이 가입한 브라질 철강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된 룰라는 브라질 최대 도시 상파울루와 인근 도시에서 파업을 주도하며 전국적인 노동운동가로 이름을 알립니다.

네 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이 되다

1979년 금속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 중인 룰라 © Wikipedia Commons
  • 브라질엔 1964년 군부 세력이 좌파 정권을 축출하고 정권을 잡은 뒤 약 20년간 군사독재가 이어져 왔습니다. 서슬 퍼런 군부 독재 치하에서 총파업을 주도하며 노동운동에 열중했던 룰라는  결국 정권의 눈 밖에 나 투옥됐죠.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그의 노동운동은 더욱 거세졌고, 1980년엔 노동자당을 창당하면서 정치적 세력화에 나섰습니다.
  • 군부 독재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룰라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당은 군부 독재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고, 결국 1986년 민주화를 이룩합니다. 이후 연방하원 의원 선거에 출마한 룰라는 전국 최다 득표로 화려하게 의회에 입성했죠. 그는 1989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결선투표까지 진출, 47%의 득표율을 올리며 돌풍을 일으켰지만 당선엔 실패합니다. 극단적인 좌파 이미지가 발목을 잡았죠. 1994년, 98년에도 대권에 도전하지만 카르도주 후보의 과반 득표를 막지 못하고 27%와 3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고배를 마셨습니다.
1986년 브라질 유명 토크쇼 'Roda Viva'에 출연한 룰라 대통령
  • 2002년, 룰라는 노동운동가로서 과격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 제일 먼저 수염을 다듬었습니다. 쿠바 혁명을 이끈 정치인 카스트로를 연상시키는 구레나룻과 턱수염부터 정리했죠. 티셔츠와 야구모자를 벗어던지고 정장을 입었습니다. 미국이나 IMF 등을 신랄하게 비판해오던 입장에서 탈피해 이들을 협상의 상대로 인정했습니다. 대선 공약 역시 온건한 정책을 내세우면서 중도 세력 포섭에 성공한 룰라는 네 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 당선의 꿈을 이룹니다. 2006년엔 재선까지 성공했죠.

보우사 파밀리아와 룰라주의

2008년 G8 정상회의에서 만난 오바마 전 대통령과 룰라 대통령 © Wikipedia Commons
  • 취임하면서 룰라가 가장 처음으로 내세운 목표는 모든 국민이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룰라 집권 초기, 브라질은 큰 경제적 위기에 놓여있었는데요. 카르도주 전 대통령의 8년 집권을 거치며 실업률이 12.3%에 육박했고 실질임금은 지속적으로 하락했습니다. 외환위기 때 IMF로부터 받은 435억 달러 규모의 차입금을 갚아야 했고, 취약한 경제 상황으로 헤알화 가치는 40%가량 평가절하된 상태였죠. 무엇보다 카르도주 전 대통령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커진 빈부 격차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 집권 8년 동안 룰라는 브라질을 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경제성장률은 2.7%에서 7.5%로, 중산층 인구 비율은 42%에서 53%로 증가했죠. 하루 수입이 2달러가 채 되지 않던 빈곤층이 룰라 집권 이후 12.7%로 약 8%P 넘게 떨어졌습니다. 경제 규모 역시 세계 8위로 올라섰죠. 브라질 증시는 6배 넘게 폭등했습니다.
  •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던 당시 사회민주주의자를 자처했던 룰라였지만 대통령 룰라는 조금 달랐습니다. 카르도주 전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상당 부분 계승한 것인데요. IMF와 맺은 경제 안정화 협정 역시 존중한다고 밝혔습니다. 기준금리를 높게 유지해 물가상승률을 4~5% 정도로 억제하면서 거시경제 안정책을 지속했고 외국자본 유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는데요. 시장경제주의자를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으로 임명해 외국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 외환 거래 규제도 해제했습니다.
  • 룰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좌파적 색깔을 더해 빈부 격차 해소에 나섰습니다. 룰라 대통령을 상징하는 공약인 ‘보우사 파밀리아’인데요. 저소득층 가구에 현금으로 생계비를 지급하는 대신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아이들에게 예방접종을 맞추도록 했죠. 아동 노동 착취 문제 등 사회 불평등의 해소와 동시에 내수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었습니다.
  • 8년간 임기를 무사히 마치며 룰라는 '가난과의 싸움'을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세계적으로 브라질의 위상을 드높이며 국민의 자긍심을 회복시켰습니다.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을 통해 약 3천만 명이 중산층에 편입됐고 브라질 경제는 성장을 거듭했죠. 결국 룰라는 지지율 87%를 기록하며 박수를 받으며 퇴임했죠.

정치범에서 대통령으로, 룰라의 화려한 복귀

2010년, 지우마 호세프(왼쪽) 지지에 나선 룰라(오른쪽) © Wikipedia Commons
  • 2010년 룰라의 후광으로 시작된 지우마 호세프 정권은 점차 위기에 빠집니다.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대두나 철광석 같은 원자재 수출에 의존해온 브라질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죠. 경제성장률이 점차 하락해 2015년과 2016년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그간 브라질이 공업 발전, 산업 구조 전환 등 경제 체질 개선에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룰라 책임론까지 불거졌습니다.
  • 설상가상으로 노동자당 정치인들이 대형 건설사로부터 뇌물을 수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부패 스캔들로 이어졌습니다. 브라질 검찰은 부패 수사 작전 ‘라바 자투(고압 분사기)’에 나서며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죠. 부패 스캔들에 룰라 대통령까지 연루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고, 수사를 지휘한 연방법원의 세르지우 모루 판사는 단숨에 반부패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2016년엔 지우마 대통령이 탄핵당했고, 2017년엔 룰라 대통령이 돈세탁과 간접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죠. 결국 2018년 룰라의 노동자당은 보우소나루에게 패배하며 집권에 실패했습니다.
  • 룰라는 혐의를 계속 부인했지만 2020년 부패 혐의로 네 번째 기소되면서 그의 정치생명은 끝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2021년, 연방대법원이 확정판결의 선고 무효를 결정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습니다. 룰라에게 실형을 선고한 세르지우 모루 판사가 재판관할권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는데요. 또한 대법원은 재판에서 인용된 증거와 증언의 공정성이 의심돼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명시하기도 했죠. 모루 전 판사가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등 편파 수사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감된 지 580일 만에 석방된 룰라는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대통령 3선 도전에 나섰죠.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룰라 © Lula Facebook
  • 2022년 대통령 선거는 득표율 50.9%대 49.1%, 간발의 차로 룰라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브라질 역사상 첫 3선 대통령이 된 룰라는 집권 1기, 2기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을 복원하는 등 복지 정책을 확대하고 최저임금 인상, 증세를 통한 공공 지출 강화 등의 정책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아마존 보호를 통해 기후 위기 대응에도 나선다고 밝히며 환경운동가 출신 인물을 환경부 장관에 임명하기도 했죠.

남미국가연합, 남미판 EU 될까?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과 룰라 대통령 © Lula Facebook
  • 룰라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남미국가연합(우나수르)이 재건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옵니다. 남미 통합을 지향하며 2008년 창설된  우나수르는 최초로 남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12개국이 모두 참여한 중남미 지역 국제기구였는데요. 자유무역을 확대하고 유럽연합(EU)과 같은 정치·경제적 통합체로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2018년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페루, 파라과이 6개 국가에서 우파 정당이 집권하고 연합 탈퇴를 선언하면서 유명무실해졌죠.
  • 브라질을 비롯한 멕시코,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 페루 등 주요 6개 국가에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2010년대 초에 이어 핑크 타이드가 부활했습니다. 핑크 타이드의 부활과 함께 남미국가연합(우나수르) 역시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요. 룰라 대통령이 가칭 ‘수르’라는 화폐로 남미 국가 화폐를 통합하는 등 남미판 EU 건설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재정 압박, 경제 위기 극복,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물가 인상 압력 등 악조건 속에서 핑크 타이드의 지속과 우나수르 재건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죠.

정치 양극화에 놓인 브라질

  • 군부 출신 정치인으로 2018년 대통령에 당선된 보우소나루는 “여성과 흑인은 국가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범죄자를 쏴 죽이는 경찰은 보상받아야 한다” “아들이 동성애자라면 사고로 죽어버리는 게 낫다”와 같은 막말을 쏟아내던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작년 재선에 실패했지만 그가 속한 자유당이 상원과 하원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한는 상황에서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었는데요.
보우소나루 브라질 전 대통령 © Wikipedia Commons
  • 대선 패배 후 보우소나루는 전자투표기기에 오류가 있었다며 대선 불복 소송에 나섰습니다. 소송은 기각됐지만 이는 혼란의 불씨를 남겼습니다. 결국 지난 8일, 보우소나루의 극성 지지자 수천 명이 수도 브라질리아의 의회와 대통령궁, 대법원 등을 습격하고 군부의 쿠데타까지 요구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2021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의사당에 난입했던 1·6 의사당 난입 사태를 떠오르게 합니다. 보우소나루가 직접 연관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이 폭동을 부추겼다는 평가가 나오죠.
1월 8일 폭동 당시 수도 브라질리아 모습
  • 룰라는 군 투입까지 지시하며 강경 진압에 나섰습니다. 시위대 2천여 명 이상을 체포하면서 이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겠다도 밝혔죠. 이번 폭동 사태는 브라질의 정치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는데요. 여당인 노동자당이 전체 의석의 24%만을 차지하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보수 야당과의 타협이 필수적인 룰라 정부는 이번 폭동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게 됐습니다. 과연 집권 3기에 나선 룰라 대통령은 다시 한번 브라질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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