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3일, 글로벌 테크 기업 ‘낫싱’(Nothing)이 유튜브 라이브로 첫 번째 스마트폰 ‘Phone (1)’(폰원)을 공개했습니다. 창립자 겸 CEO 칼 페이는 키노트에서 이렇게 말했는데요.
최근에는 서로 비슷하기만 할 뿐, 어떤 영감도 없는 스마트폰들만 쏟아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혁명이란 이미 끝난 것 같죠.
대담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발언입니다. 삼성과 애플 등 스마트폰 ‘공룡’들이 신제품을 내놓아도 압도적인 반향은 없으니까요.
낫싱은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칼 페이는 변화를 선언했습니다. 낫싱의 호언장담은 ‘근거 있는 자신감’일까요? 이번 주 <브랜드 한입>에서는 낫싱이 주목받는 이유를 브랜딩 전략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애플 도전기의 역사
사실 애플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기업은 무수히 많았죠. 하지만 플래그십 라인에서 애플에 맞서는 데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었는데요.
- 세계 3위 스마트폰 제조사 샤오미도 프리미엄 제품군은 '아직'입니다. 샤오미는 2021년 플래그십 라인 구축을 본격화하고 '중국판 애플'이 되겠다고 선언했는데요. 실제로 2021년 전세계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4위(5%)에 올랐지만, 1위인 애플(60%)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중국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비보나 오포보다 낮은 점유율(5%)을 보이고 있죠.
- 화웨이는 미국의 광범위한 제재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전반적인 부진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기술이나 장비를 활용한 반도체는 화웨이에 팔지 못하게 해 AP 등 주요 부품 수급에 차질을 빚었는데요. 2021년 하반기 공개된 플래그십 제품 'P50'의 경우 출시가 반년이나 지연되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또한 전년 대비 7%P 감소하면서 6%에 그쳤죠.
- 구글도 '픽셀' 시리즈로 애플에 도전해 왔지만, 아직 마땅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는데요. 구글은 2012년 모토로라를 인수해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고배를 마셨습니다. 2017년에 대만 HTC의 픽셀 부문을 인수해 재도전하고도 여전히 보급형이라는 인상을 지우지 못했는데요. 다만, 2021년 출시된 픽셀 6은 플래그십 라인으로 안착, 같은 해 4분기에 사상 최대 판매 실적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럼 낫싱은?
낫싱은 사람과 기술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하는 글로벌 테크 기업입니다. 2020년 10월 런던에서 설립된 후 2021년 7월 첫 번째 제품 무선 이어폰 'Ear (1)'(이어원)을 공개했으며, 지난 7월에는 스마트폰 Phone (1)을 출시했는데요.
- 칼 페이는 중국의 대형 스마트폰 제조사 ‘원플러스’의 공동창립자 경험을 살려 초창기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왔습니다. 원플러스에서 플래그십 킬러(경쟁력 있는 스펙과 합리적인 가격의 스마트폰)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적도 있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낫싱은 올해 3월 시리즈 B 투자를 7천만달러로 마감했습니다.
- 2021년 3월에는 커뮤니티 펀딩을 통해 소비자에게 낫싱의 비공개 커뮤니티 일원이 될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54초 만에 100만달러가 모일 정도로 꽤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요. 설립 후 반년도 되지 않아 팬덤 형성에 성공한 것이죠.
- 기술 자체가 “아무것도 아닌 듯” 일상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이 낫싱의 신조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스펙 경쟁은 지양하고,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는 사용자 경험에 집중하는 것이 낫싱의 핵심 전략입니다.
낫싱의 목표, 진짜 구현됐을까?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 없는 사용자 경험이라니, 듣기에는 그럴듯한데요. 낫싱이 선보인 제품들을 분석해 이들이 브랜드 전략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Ear (1)
무선 이어폰 Ear (1)에는 낫싱의 세 가지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불필요한 요소는 전부 잘라낸 간결함, 일상과 닮아 있는 디자인의 익숙함, 누구나 고민 없이 쓸 수 있는 편리함입니다.
- 투명한 디자인은 불필요한 외적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간결함을 직관적으로 드러냅니다. 기술 또한 필수적인 것만 담은 덕에 굉장히 가벼운데요. 이어버드가 각 4.7g으로, 에어팟 프로(5.4g)나 갤럭시 버즈(5g)와 비교해도 우세합니다.
- 동시에 Ear (1)은 외양의 익숙함을 통해 소비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데요. 할머니의 담뱃대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디자인으로 ‘힙’과 레트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습니다.
- 편리함도 보장합니다. 세 종류의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ANC), 전용 앱을 통한 모션 컨트롤과 고속 페어링 등의 기능이 탑재됐습니다. 파트너사 ‘틴에이지 엔지니어링’과의 기술 제휴로 음향도 신경 썼죠.
Phone (1)
Ear (1)이 맛보기였다면, 스마트폰 Phone (1)은 본격적으로 ‘낫싱다움’을 드러냅니다. 고작 15분, 그것도 극장의 객석에서 진행된 키노트에서는 거추장스러움을 탈피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데요. Phone (1)은 부품이 보이는 투명한 뒷면 디자인으로 Ear (1)의 간결함을 계승합니다. 동시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사용자에게 와닿는 편리함을 주는 것이 목표인데요.
- 사진과 같이 투명한 뒷면에 조명을 배치한 ‘글리프 인터페이스’(Glyph Interface)는 Phone (1)이 쫓는 간결함과 편리함의 핵심입니다. 뉴욕의 지하철 노선도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디자인은 독특하면서도 실용적입니다. 사용자는 화면을 켜지 않고도 조명 패턴을 보고 여러 가지 알림이나 충전량 등을 알아볼 수 있죠. 벨소리와 패턴을 매치하거나 패턴을 커스터마이징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 안드로이드 OS 기반 자체 운영체제 ‘낫싱 OS’를 탑재해 일관적인 디자인과 매끄러운 사용자 경험을 추구합니다. 기존 안드로이드 OS를 전면 개조해서 오히려 무거워지는 것은 지양하고, 대신 낫싱만의 가치를 얹는 데 집중했는데요. 익숙한 UI 위에 도트를 활용한 위젯과 글꼴, 고유한 알림음 등이 더해졌습니다. 지난 4월 공개된 '낫싱 런처'로 낫싱 OS를 체험해 볼 수 있는데요.
- 낫싱은 Phone (1)을 통해 낫싱의 제품뿐만 아니라 타사 제품까지 통합하는 IoT 생태계를 만들고자 합니다. 사람과 기술 사이 장벽을 무너뜨리겠다는 비전과도 맞물립니다. 현재는 테슬라와 연동해 차의 헤드라이트나 에어컨 등을 켤 수 있습니다. 더욱 다양한 제품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 하는데요.
- 자세한 하드웨어 사양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낫싱 성적표 중간 점검
이처럼 낫싱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자 경험 향상에 집착해 ‘고여 버린’ 스마트폰 시장에서 차별화를 꾀했는데요. 타사 플래그십 라인에 비해 저렴한 가격과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제품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 상장 전이라 공식적인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Ear (1)은 약 1년간 53만 대가량 팔렸다고 합니다. 2021년 4분기 세계 무선 이어폰 판매량이 1억 380만 대임을 고려하면 두드러지는 성과는 아니죠.
- 하지만 존재감을 키우는 것에는 성공했습니다. Ear (1)은 출시 당시 글로벌 패션 플랫폼 하입비스트, 키스에서 1분 만에 매진됐는데요. 낫싱의 브랜드 콘셉트가 스타일을 추구하는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칼 페이는 Phone (1)의 키노트에서 “Ear (1)과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만 보여준 낫싱이 지금까지 (커뮤니티 펀딩을 통해) 거의 1만 명의 투자를 받았다”라며 놀라움을 드러내기도 했죠.
- 국내에서도 2021년 9월 무신사에서 진행된 Ear (1) 한정 판매가 1분만에 끝난 적이 있습니다. 낫싱은 제품의 독특한 디자인을 살려 “패피를 위한 무선이어폰”이라는 슬로건을 설정했는데요. 무선 이어폰을 패션 플랫폼에서 최초 발매하는 전략이 한국에서도 유효했던 것이죠.
- Phone (1)의 경우 지난 7월 25일 쿠팡의 로켓직구로 국내에 최초 소개됐습니다. 5개 중 3개 모델이 2시간 만에 완판됐는데요. 아직 공식적인 한국 출시 일정은 없지만, Phone (1)이 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됐음은 분명합니다.
발매 이후 많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후기가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퍼진 지금, 낫싱의 Phone (1)이 애플이나 삼성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대신해서 꼭 사야 한다는 호평은 찾기 힘듭니다. 실제로 수많은 스타트업, 심지어는 구글 급의 공룡 기업마저 고배를 마시곤 하는 스마트폰 시장인 만큼 낫싱이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데요. 하지만, 판매 결과와 별개로 낫싱의 Ear(1)과 Phone (1)은 눈길을 끄는 독특한 디자인과 이를 십분 활용한 마케팅을 통해 이름을 충분히 알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어쩌면, "혁명이 끝났다"던 스마트폰 시장에 새로운 영감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