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줄 요약
- 미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이 역사적 고점에 다다르며 고평가 논란이 재점화됐습니다.
- 파월 연준 의장도 "주가가 상당히 고평가됐다"라고 언급했고, 버핏지수는 사상 최고치인 217%까지 치솟았는데요.
- AI 열풍이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렸지만, 결국 기업의 실적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거품 논란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미국 증시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투자 열기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대형 기술주의 급등이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그만큼 과열에 대한 경고도 커졌는데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한마디가 촉발한 고평가 논란 속에서, 높은 밸류에이션이 '뉴노멀'인지 고평가인지를 두고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오늘 <경제 한입>에선 미국 증시의 고평가 논란을 들여다 봅니다.
밸류에이션: 기업의 가치를 수치로 평가하는 과정으로, 주로 미래의 예상 이익과 현금흐름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계산합니다. 투자자들은 이를 통해 기업의 주가가 고평가인지 저평가인지 판단하고, 주식 투자나 인수합병 결정에 활용합니다.
미국 증시 고평가 논란, 과열의 징후일까
🫧 파월의 한마디가 불붙인 버블 논란
지난달 23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로드아일랜드 상공회의소 연설에서 "여러 지표로 볼 때 주식 가격은 상당히 고평가돼 있다"(fairly highly valued)라고 말했습니다. 단 한 마디였지만 시장은 즉각 반응했는데요. 같은 날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2.8%), 아마존(-3.0%), 메타(-1.3%), 테슬라(-1.9%) 등 대표 기술주(M7)가 일제히 하락했죠. AI 호황에 힘입어 날아오르던 빅테크 기업의 주가가 파월 의장의 발언에 흔들린 겁니다.
여러 지표도 증시 고평가를 가리킵니다. 현재 S&P500의 12개월 선행 PER은 약 22배로, 2000년 닷컴버블 정점(25배)에 근접했습니다. 실러 PER은 39배로, 닷컴버블 당시 44배를 앞두고 있는데요. 장기 평균(17배)보다 두 배 이상 높다는 점에서 주가가 고평가됐다는 지적이 나오죠. 특히 고용 둔화 등 경기 둔화 신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주가가 계속 오르면서, 실적보다 기대가 시장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12개월 선행 PER: PER(주가수익비율, Price to Earnings Ratio)은 기업의 주가를 1주당 순이익(EPS)으로 나눈 값으로, 주가가 이익에 비해 얼마나 비싼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12개월 선행 PER은 향후 1년간 예상 순이익을 기준으로 계산한 PER로, 투자자들이 미래 실적 전망을 얼마나 주가에 반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죠.
실러 PER (Shiller PER, CAPE Ratio): 과거 10년간 기업의 순이익(당기순이익)을 물가 변화에 맞게 보정해 계산한 PER입니다. 경기 호황기나 불황기 같은 일시적 요인의 영향을 줄이고, 주식시장이 장기적으로 고평가됐는지 저평가됐는지를 더 안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 지금 미국 증시, 닷컴버블과 닮은꼴이라고?
전문가들은 지금의 미국 증시가 1999~2000년 닷컴버블 시기와 유사하다고 말합니다. 소수의 대형 기술주가 시장 전체를 이끈다는 점 때문인데요. 닷컴버블 당시 S&P500 상위 10개 기업 중 5개가 기술주였다면, 지금은 8개에 달합니다. 상위 10개 종목의 시가총액 비중은 40%로, 당시(25%)의 거의 두 배죠. 애플·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형주의 영향력이 시장 전체를 좌우하는 셈입니다.
미국 최대 증권사 찰스슈왑의 케빈 고든 수석전략가는 "시장의 성과가 몇몇 종목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라고 우려했는데요. M7의 주가는 2023년 3월 저점 이후 평균 223% 상승했는데, 이는 과거 버블 당시의 평균 상승률(244%)과 거의 일치합니다. 어떻게 보면 과열의 마지막 단계에 다가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이익보다 주가가 훨씬 빠르게 오르면 투자 심리는 쉽게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기대가 현실에 미치지 못하는 순간 매도세가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AI 관련 기업이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매출 성장을 보이지만, 그 속도가 유지되지 못하면 'AI 버블'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옵니다.
🔥 과열 징후, 신용매수와 가계지분에서도 드러나
시장 과열은 지표뿐 아니라 투자 행태에서도 확인됩니다. 현재 미국 가계의 주식 보유 비중은 40%를 넘어섰는데, 이는 닷컴버블 당시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개인 투자자가 대거 뛰어들면서 주식시장이 단기 뉴스와 심리에 더 민감해졌죠. 신용거래 잔고, 즉 빚을 내서 주식을 사는 규모도 팬데믹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금리가 내려가면 괜찮지만, 만약 경기 둔화나 금리 반등이 나타나면 투자자는 급하게 빚을 갚기 위해 주식을 팔게 되는데요. 이럴 때는 작은 충격도 큰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고밸류에이션, 뉴노멀인가 거품인가
😲 버핏지수 217%, 사상 최고치 돌파
미국 증시의 과열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대표 지표가 바로 버핏지수입니다. 미국 주가지수 중 하나인 윌셔5,000 지수를 국민총생산(GNP)으로 나눈 비율인데요. 버핏지수가 최근 217%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에 도달했습니다. 닷컴버블 당시 기록인 150%, 코로나19 팬데믹 랠리 시기의 190%를 모두 뛰어넘은 수치죠.
버핏지수: 윌셔 5000 지수(미국 전체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을 대표하는 지수)를 미국의 국민총생산(GNP)으로 나눈 값입니다. 미국 전체 주식시장 규모가 자국 경제 규모(GNP)에 비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주식시장의 고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쓰입니다.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은 과거 "이 지표가 200%에 가까워지면 불장난을 하는 셈"이라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 기준에 따르면 지금의 시장은 명백히 과열 구간인데요. 주가가 경제 성장보다 훨씬 빠르게 오른다는 의미죠. 미국의 경제 매체 CNBC는 "오늘날 미국 증시는 미지의 영역에 들어섰다"라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다만 반론도 있습니다. 20년 전과 달리, 지금의 미국 경제는 공장이나 설비 같은 물리적 자산보다 데이터·소프트웨어·특허 같은 무형자산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건데요. 이런 산업 구조에서는 과거보다 더 높은 밸류에이션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 산업 구조 변화, 고평가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AI와 클라우드 산업은 전통적인 밸류에이션 기준을 바꿔놓았습니다. 제조업처럼 장비나 공장에 돈을 쏟지 않아도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으로 높은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죠. 현재 엔비디아의 순이익률은 50%, 마이크로소프트는 45%를 넘습니다. 과거 산업 구조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이 때문에 월가에서는 이제 높은 PER은 비정상적인 게 아니라 새 표준(뉴노멀)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S&P500은 과거보다 구조적으로 더 높은 멀티플을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는데요. 무형자산 중심의 구조 전환과 더불어 부채 구조 개선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업 상당수가 부채를 장기 고정금리로 조달해 금리 충격을 줄였고, S&P500의 시가총액 대비 순부채 비중도 10%대까지 낮아졌죠.
멀티플: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상대적 지표로, 주가나 기업가치를 이익·매출·자산 등 특정 재무지표로 나눈 비율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PER(주가수익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 EV/EBITDA 등이 있으며, 같은 산업 내 기업 간 비교에 주로 활용되죠.
하지만 이런 논리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AI가 가져올 생산성 향상이 실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높은 밸류에이션은 정당화되기 어렵기 때문인데요. 기술 혁신이 이익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 투자와 실적의 괴리, 닷컴버블의 교훈
AI 산업의 빠른 확장은 이익 없는 성장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매출과 순이익은 빠르게 늘지만, 현금흐름은 오히려 줄고 있기 때문인데요. 데이터센터와 그래픽카드(GPU) 확보를 위한 설비투자가 폭증하면서, 실제 남는 돈은 많지 않다는 해석이죠.
데이터센터: 기업이나 기관이 대규모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를 모아 데이터를 저장·처리·관리하는 시설로, 클라우드 서비스와 AI 학습의 핵심 인프라입니다.
그래픽카드(GPU): 원래 영상 처리용으로 개발된 반도체지만, 병렬 연산 능력이 뛰어나 AI 학습과 딥러닝 연산에 필수적인 하드웨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엔비디아의 GPU는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 시장을 주도하며,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중심축으로 꼽힙니다.
특히 최근 엔비디아가 오픈AI에 1,000억 달러(약 140조 원)를 투자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습니다. 겉으로는 AI 인프라 확충을 위한 투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시장의 거품을 키우는 순환 거래라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엔비디아가 오픈AI에 투자하고, 오픈AI는 그 자금으로 다시 엔비디아 칩을 구매(또는 임차)하는 구조이기 때문이죠. 이는 기업이 스스로 수요를 만들어내 매출을 부풀리는 벤더 파이낸싱 방식으로, 1990년대 닷컴버블 시기 통신장비 업체가 고객사에 대출을 해주고 자사 장비를 사게 했던 관행과 유사합니다.
벤더 파이낸싱(vendor financing):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기업(벤더)이 구매자에게 자금을 빌려줘, 그 자금으로 자사 제품을 구매하게 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앞으로 미국 증시는?
⚠️ 기술은 진짜지만 속도는 위험하다
AI 업계에서도 투자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경고가 이어집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AI는 산업적 버블 단계에 있다"라고 말했고,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투자자들이 과열돼 있다"라고 인정했는데요. 기술 자체의 잠재력은 크지만, 수익화 속도가 아직 투자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죠. 최근 오픈AI 전현직 임직원이 66억 달러어치의 주식을 매각했는데, 이 과정에서 오픈AI의 기업가치가 약 5천억 달러(700조 원)로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는 오픈AI 예상 매출의 25배 수준입니다. 블룸버그는 이를 두고 "AI 투자가 현금흐름이 아니라 기대 서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라고 지적했는데요. 결국 기술 자체는 진짜지만, 시장이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문제인 셈입니다.
🗄️ 데이터센터 전쟁, CAPEX의 그림자
AI 확산은 데이터센터 건설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은 수십조 원 규모의 설비 투자를 진행 중인데요. 하지만 전력·냉각·부품 공급망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실제 완공 속도는 더딘 상태입니다. 투자금은 이미 집행됐지만, 매출로 이어지기까지는 최소 1~2년이 걸리죠.
이렇듯 투자가 먼저 이뤄지고 수익 창출이 뒤따르지 않는 구조는 과열된 시장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성장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투자비와 감가상각 비용이 한꺼번에 반영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는데요. 결국 기업의 현금흐름이 줄어들면서 밸류에이션에도 압박이 가해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규모 투자가 오히려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아이러니한데요. GPU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자금력과 전력망 접근성, 대규모 모델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기술 역량이 일부 대기업에 집중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현재 AI 시장은 거품이 끼어가는 동시에 독점이 심화하는 복합적인 양상을 보입니다.
이제 시장의 시선은 다가올 분기 실적 발표에 쏠립니다. AI 매출이 실제로 기업의 순이익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지금의 밸류에이션이 정당화되겠지만, 반대로 늘어난 매출이 이익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고평가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과연 오늘의 고평가 논란이 내일의 뉴노멀로 바뀔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